이 고백에는 칼뱅(Jean Calvin)이 제네바로 다시 돌아오라고 요청한 파렐(Farel)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드러낸 헌신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프랑스를 떠나 제네바로
1533년 니콜라 코프의 팔복에 대한 설교에 연루되어 칼뱅은 프랑스 남부 생통주 지방의 앙굴렘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피신을 합니다. 이곳에서 기독교 강요 초판을 출판하기 위한 작업을 하였으나 파리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1535년 바젤로 피신한 칼뱅은 1년 뒤인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을 출간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젤에서도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자 칼뱅은 스트라스부르로 갈 계획을 세우고 길을 떠나지만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길이 막혀 제네바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고, 제네바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네바에는 기욤 파렐이 수년 동안 열정적인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종교개혁의 영향 아래 들어오게 했지만 제네바가 종교개혁에 동참한 이유는 종교개혁 정신이나 신학 때문이 아니라 가톨릭의 부당함과 반감 때문이었기에 종교개혁을 이끌고 갈 지도자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파렐은 칼뱅이 제네바에 하루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칼뱅을 찾아가 제네바에서의 목회를 요청하지만 칼뱅이 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화가 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을 이토록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위급한 상황을 못 본 척하고 단지 학문만을 위한 평온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대의 평화에 저주하시길 원한다.”
하지만 이 말에 두려움을 느끼고 충격을 받은 칼뱅은 결국 제네바에서 목회를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네바는 아직 종교개혁을 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칼뱅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은 가톨릭에 대한 반감으로 종교개혁에 몸을 담았던 부유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였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중상모략을 통해 칼뱅과 파렐 두 사람을 추방하였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시간
칼뱅은 처음 가졌던 저술가로서의 삶을 다시 허락하셨다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고 제네바를 떠나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게 됩니다. 스트라스부르는 일찍부터 종교개혁을 옹호한다고 선언했으면서도 다양한 복음주의 견해와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용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박해받는 자들의 주요 도피처 가운데의 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주로 루터파 사람들이 개혁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부처(Butzer)가 유력한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었고, 칼뱅은 부처의 초청으로 프랑스 피난민 교회를 담임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연구와 저술 활동에 힘을 쏟았는데, 1539년에는 『기독교 강요』 개정판을 내고 1540년에는 『로마서 주석』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1540년 8월에는 미망인 이델레트 드 뷔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제네바로 부르심을 받다
한편 칼뱅을 추방한 제네바 시는 거의 무정부 상태로 돌아갔으며 날로 부패하였고, 로마 가톨릭의 세력에 의해 종교개혁은 다시 힘을 잃을 위기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칼뱅의 초청을 다시금 요구하였고, 결국 시의회는 1540년 9월 21일 칼뱅을 재초청하기로 결의하여 초청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처음에는 칼뱅이 선뜻 응하지 않았으나 파렐의 간곡한 권유 때문에 1541년 9월 13일 화요일에 제네바에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제네바의 요청을 받은 칼뱅은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제네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많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끌림에 의해 돌아가기로 결정하였고, 그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하루에 천 번 부서져야 했기에, 이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차라리 백 번 이상이라도 다른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선택권이 내게 있다면, 나는 당신의 뜻을 따르는 것 외에 모든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의 마음이 죽은 것같이 여기며, 주님께 나를 제물로 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의 내용에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고백을 하였는지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뜻과 나의 애틋한 감정들을 바치오며, 복종시킬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뜻을 버려야만 할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말씀하실 것을 소망하면서 나 자신을 복종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였는지는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nostri non sumus)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이나 우리의 의지가 우리의 계획과 행위를 좌우하지 말게 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을 좇아서 유익한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지 말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 『기독교 강요』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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